2006 아라리오 개인전 권오상-이주현 인터뷰 - GWON OSANG

Statements

2006 아라리오 개인전 권오상-이주현 인터뷰

2006

조각가 권오상 & 큐레이터 이주현

이 인터뷰는 조각가 권오상z과 아라리오 갤러리의 큐레이터 이주현의 대담을 정리, 편집한 내용입니다.


I. 조각가 권오상

이주현: 권오상 하면 떠오르는 것이 사진과 관련된 조각 작업이었다. '데오도란트 타입(Deodorant Type)' 연작에서 사진으로 조각작품을 만들어 왔고, '더 플랫(The Flat)' 연작에서는 잡지의 사진을 오려 조각을 만들어서는 그것을 사진으로 찍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청동으로 자동차를 만들어서는 '더 스컬프쳐(The Sculpture)'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전통적 조각의 재료를 사용하고, 슈퍼카를 소재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
 
권오상: 몇 년 전부터 만들어 보고 싶었던 것이, 누가 보더라도 조각다운 조각이었다. 그중의 한 파트가 정물조각이었다. 그리고 그 소재는 화장품, 시계, 보석 등 어떤 정물이 되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더 플랫' 연작에서 이미 그 소재들을 다루었다. '더 플랫' 연작은 조각을 인스톨한 장면을 평면으로 보여주는 개념이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조각이라고 여기고 우겨도 결국 관객에게는 평면 작업이었다. 그래서 이제 어떤 소재를 다루던 간에 정말 그대로의 조각, 정물 조각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처음부터 자동차를 소재로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화장품, 파카 잉크병, 만년필, 모토로라 핸드폰을 만들어 보았다. 이 습작들은 실제 그 사물들을 모델링하며 조각적인 터치를 조금 가미한 정도다. 그러다가 어떤 사물이든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다. 냉장고를 해도 되고, 에어컨을 해도 되고... 그러다가 자동차까지 생각이 이르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가장 현대적인 오브제라는 생각을 했고 '더 플랫'에서 다루었던 물건들에 대한 연결고리를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동차 중에서도 현대차나 시트로엥 같은 일반적인 자동차가 아니라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Lamborghini Murcielago)나 엔초 페라리(Enzo Ferrari)와 같은 슈퍼카를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자동차 작업을 위해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하고 진행하면서 슈퍼카라는 소재가 아카데믹한 방식으로 현대적인 조각을 만드는 데에 상당히 적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보기에 오늘날 슈퍼카를 제조하는 회사들은 현대 미술을 하는 집단처럼 느껴진다. 이 회사들은 쓸데없는 것들을 죽어라고 만든다. 얼마 전 출시된 부가티 베이론(Bugatti Veyron)의 경우를 보자. 몇 년 동안 연구해서 자동차 모델 하나를 만드는데, 1000마력에 달하는 엔진 성능은 공도에서는 그 힘을 다 사용해 볼 수도 없는 것이고, 좌석은 두 명이 겨우 탈 수 있는 크기인데다가, 실내에는 편의 장치를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달리기 위한 장치들만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이렇게 열광을 하냐고 생각하다가는, 현대미술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자동차나 오토바이의 디자인 자체가 인체의 구성을 바탕으로 디자인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조각의 소재로 더욱 적당했다. 작업실에 무르시엘라고와, 엔초, 베이론의 원형을 동시에 놓고 바라보니, 마이욜(Aristide Maillol)의 조각을 보는 것 같았다.
 
처음 조각을 배울 때 로댕이나 부르델을 접하는데, 그런 조각사적 접근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이 시대에 로댕이 살았다면 무얼 만들었을까 하는 질문을 던졌다. 내가 로댕은 아니고, 로댕의 히스토리를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당대에 로댕이나 미켈란젤로 같은 조각가가 살아있었다면 무엇을 만들었을까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주현: '더 스컬프쳐'를 제작하면서 조각의 특성 중 어떤 것들에 가장 주목을 했나?
 
권오상: 처음에는 재료였다. 예를 들어, 이 작업은 "브론즈로 슈퍼카를 만들었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브론즈는 사실 얇게 쓰면 별로 무겁지 않으며, 오히려 지점토를 두껍게 사용하면 그건 굉장히 무거워진다. 이와 같이 조각의 개념에는 머리 속에서만 도는 관념적인 이야기가 개입되어 있다. 그런 조각의 재료에 관련된 단어의 조합, 개념들에 충실하게 생각했다.
 
이주현: '데오도란트 타입'이나 '더 플랫' 연작을 통해 사진 조각이라는 장르를 개척했던 권오상이 전통적 조각으로의 회귀를 택한 것인데, 그 작업들을 시작했던 배경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해서 이야기 해주었으면 한다. '데오도란트 타입'은 가벼운 조각을 만들고자 해서 시작했던 작업으로 알고 있다.
 
권오상: '데오도란트 타입'을 통해 가벼운 조각을 만들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근래에 들어서 많이 알려진 것 같다. 대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하면 무거운 재료를 다루는 작업들을 많이 한다. 전통적인 재료들을 사용하고 용접, 석조를 통해 작품을 만들어내야 조각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작업을 할 때는 작품을 움직일 일이 매우 자주 생긴다. 그런데 나는 도저히 그 무거운 것들을 옮기는 일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손쉽게 옮길 수 있는 작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생 시절에는 모토가 있었다. 나와 친한 친구 둘이서 자연스럽게 움직이지 못할 작품은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작업을 한다 해도 다른 한계가 또 있었다. 예전에 다마스 봉고차를 만들었는데, 다행히 무게는 두 명이 손쉽게 들 수 있을 정도로 가벼웠다. 그런데 그 크기 때문에 작품을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이주현: 무거운 조각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고, 나중에는 '더 플랫'으로 평면 작업을 내놓았으면서도 권오상은 스스로 조각 작업을 한다고 여기며 조각이라는 매체를 선택했다. 장르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하면서 조각의 해체나 다른 장르로의 전환을 고려하지는 않았는가?
 
권오상: 예전에 '데오도란트 타입' 연작을 할 때 암스테르담에서 저명한 사진가와 2인전을 하자는 제안 등 사진계에서 러브콜이 많았다. 그리고 2001년 개인전 즈음에는 사진 비평상에 응모해 정식 사진가로도 데뷔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에게 사진가는 재미가 없었다. 사진이라는 장르가 재미있다는 것이 아니라, 사진가들, 사진하는 동료들이 흥미롭지 않았던 것이다. 편견일지 모르지만 기질적으로 조금 다른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한 이후로 스스로를 조각가라고 이야기하게 되었던 것 같다.

대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작가 명칭을 만들었는데, 일부러 석수장이 명함처럼 궁서체에 눌러 찍은 프레스 인쇄로, "조각가 권오상"이라는 이름을 세로쓰기로 각인했다. 그 때가 '데오도란트 타입' 연작을 처음 제작하던 시기였는데, 현대적인 작업을 하면서도, 그런 고리타분해 보이는 명함을 만들어 스스로 조각가다움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 외모는 사실 조각가가 전혀 아닌데 조각가와 같은 이미지를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주현: 권오상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오해했을지 모르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권오상은 지속적으로 조각 작업을 추구했고, 이번 '더 스컬프쳐' 연작을 통해 그 조각가다운 면모를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게다가 나는 이 청동으로 만든 슈퍼카 작업이 미술계 안에서 시기적으로 적절하다는 생각해 보았다. 몇 년 전부터 회화가 다시 주목 받아왔고, 얼마 전 '회화의 승리'라는 전시가 반향을 일으켰듯이, 권오상이 '더 스컬프쳐'로 청동조각을 전면적으로 대두시킴으로 해서 '조각의 승리'에 시발점을 마련하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해보았다. '더 스컬프쳐'를 제작 하면서 그런 것을 염두에 두기도 하였나?
 
권오상: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몇 년 전 서교동 작업실에서 작업할 때부터 같이 있던 다른 조각가 친구들에게 입버릇처럼 '분명히 조각의 시대가 온다'고 이야기 했었다. 그 때 그 친구들은 전통적인 조각을 하는 친구들이었다. 내가 그 때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은 친구들을 응원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했던 이야기였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전통적인 조각을 할 것이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막상 청동으로 조각 작업을 한다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자, 자동차라는 소재를 두고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동차를 소재로 한 작가들이 많다는 것을 걱정한 것이다. 자동차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자동차 작업을 했던 작가와 작품에 대해 조사를 했다. 정말 밤하늘의 별처럼 많았다. 사람들이 걱정하는 부분이었지만 나는 더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자동차 작업이 많다는 것은 그 소재가 정말로 동시대가 다룰만한 가치가 있다는 의미이지 않은가. 그리고 자동차 작업을 누구도 하고, 누구도 했지만, 실제 자동차를 가져와 설치 작업을 했지 조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한가지 사실은, '더 스컬프쳐'를 제작하면서 대상이 되는 슈퍼카를 실제로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정보는 사진과 인터넷 잡지, 모형을 통한 것이다.
 
이주현: 이번 자동차 작업은 '데오도란트 타입'의 사진조각이 아니라 청동으로 제작했고 그래서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조각 그대로의 조각이 되었다. 이전 작업과의 연계성을 살펴보자면 조각의 개념에 대한 어떠한 수순을 밟은 것으로 보이는데, 혹시 '더 스컬프쳐'에 "조각의 근본으로의 회귀" 같은 미술사적 의도가 개입되어 있지는 않은가?
 
권오상: 그런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사실 '더 스컬프쳐'를 통해 조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보여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작업을 하면서 몇 천년간 이어지는 장르라는 것이 이유가 있는지를 깨달았다. 브론즈 작업을 하면서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도 여러 가지 컨트롤하기가 힘들었다. 내가 '데오도란트 타입'이나 '더 플랫'을 통해 사진 조각을 접목시킨 작업만을 해봤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모르고 더러는 인정하지 않기도 하지만, 학창 시절부터 모델링을 잘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K가 이번 새 작업을 처음 보면서 한 이야기가 있다. "너는 조각 작업을 하기는 했는데 왜 이렇게 평면적으로 보이나?" 그리고 옆에 있던 작가는 자기는 무얼 만들어도 튀어나올 것처럼 입체적으로 보인다고 이야기 하여, 아무래도 권오상은 평면 작업, 사진 작업을 오랫동안 해서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예전에 G큐레이터가 내 드로잉을 보면서는 조각가가 아니라 페인터의 드로잉 같은 느낌이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내가 미술을 시작할 때부터 사람들은 항상 내 작업을 두고 회화적이라고 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조각가가 되고 싶은 열망 같은 것을 가지게 된 것 같기도 했지만, 또 한 편으로는 회화적인 작업을 하는 것을 장점이라 여기기도 한다.



II. 전환의 역사

이주현: 권오상은 사진조각 연작인 '데오도란트 타입'을 시작하면서 인체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다른 형상들과 접목시키거나 변형된 인체를 제작하더니 개별적인 사진조각들을 한데 모아 설치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는 다른 개념의 사진 조각인 '더 플랫'을 발표했다. '더 스컬프쳐' 이전의 사진 조각 작업에 대한 히스토리를 형식적인 측면과 내용적인 측면으로 정리해서 이야기해 달라.
 
권오상: 먼저 형식적으로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단순히 가벼운 조각을 만들어 보려는 의도에서 '데오도란트 타입' 연작을 제작했고, 2001년 개인전에 즈음하여 그 연작에 대한 나름의 개념적 정리를 마쳤다. 5년간 '데오도란트 타입'을 하다 2003년에 '더 플랫' 연작을 발표했는데, 그 시작은 현대미술에 왜 정물조각이 등장하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가령 집에 걸어놓을 만한 정물화도 있고, 정물 사진 등의 정류 미술품은 있는데, 현대미술에서는 정물 작품이 전면적으로 부각되지는 않고 있다. '더 플랫' 연작은, '데오도란트 타입' 이후에 탄생한 '간단한 조각'의 개념으로 보면 된다. 그리고 '더 스컬프쳐'는 가벼운 조각과 간단한 조각 이후에 만들어진 조각다운 조각이다. 마치 오일페인팅으로 현대미술을 하는 페인터처럼, 아카데믹한 재료로 가장 아방가르드한 작업을 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해 보자면 사진 조각 연작을 시작할 때 시각적인 이미지, 광고나 미술사에서 차용한 부분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모든 시각 이미지를 차용해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며, 생활하면서 나왔던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머리가 두 개 달린 인물상 같은 작업은 사진의 메커니즘에서 나온 것이다. 사진이 가질 수 있는 확대, 축소가 가능하고 복제가 가능한 성질, 그것은 사진에 대한 성질일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시대의 속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속성은 다시 조각과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각은 작품의 원형을 만들고, 석고 틀을 떠내는데, 이 과정은 필름에서 네거티브를 만드는 것과 같다. 그리고 석고 틀을 조립해서 다시 원형을 만드는 작업은, 사진의 인화 과정에 들어맞는 것이다. 그리고 광고와 현대적 이미지에 주목하면서 '더 플랫' 연작이 나오게 되었다.
 
이주현: '데오도란트 타입'이나 '더 플랫' 중의 개별적인 작업에도 권오상이 생각한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작 안의 개별 작업들 간의 연관성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권오상: 처음에 시작된 것은 사진으로 만든 가벼운 조각이었는데, 먼저 목조용 끌을 만들고, 그 다음에는 (손)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힘에 대한 집착적 레포트>(p.82)라는 타이틀로 물질과 그것을 다루는 능력이나 힘을 상징하는 팔을 만들었다. 그런 세 가지 요소들이 나한테는 없는, 부족한 듯한 느낌을 주는 것들이기 때문에 만들었던 것이다. 조각과 사진을 연결시켰지만 나는 그 당시에 사진의 메카니즘에 더 많은 관심을 두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처음에 그 작업들이 사진계에서 먼저 반응을 얻었고, 또한 그 시기가 사진이 강세를 보이던 시기였다. 크기를 쉽게 변화시킨다거나, 사진의 네거티브와 조각에서의 틀 간의 유사성과 같은 메커니즘에 대한 관심을 통해서 여러 가지 변형된 인체, 쌍둥이나 머리가 여럿 달린 인체를 만들어내고(p.103, 105, 106), 또 하나의 사진을 가지고 여러 가지를 조합해서 여러 가지 다른 물질을 만들어내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형상들이 서로 접목되는 것은 예를 들어 <예술이 가지는 절대적 권위의 숭배에 관한 280장의 진술서>는 예술 자체에 대한 관심이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동물과 사람을 콜라쥬시킨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실 그 정도 콜라쥬는 어느 문화의 어느 광고에나 등장하는 특별할 것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중 시야에 관한 360장의 진술서>(p.106)와 같은 경우는 내가 가지고 있던 심리적 상태를 표출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면, 제목을 신화에서 차용한다거나 더 심리적인 용어로 접근을 했겠지, 그렇게 붙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진의 메커니즘을 보여주려 했기 때문에, 그런 메커니즘을 보여주면 동시대를 자연스럽게 반영하게 되기 때문에 그런 제목을 지었던 것 같다.

그리고 설치작업은 사진의 메커니즘을 통해 사진 조각에서 쌍둥이(p.103)나 다리가 하나만 있는 인물상(p.105) 등 여러 가지 형상이 등장하는데, 처음에 다른 사물들을 조합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냈듯이 개개의 조각 작업들을 따로 조합해서 내용이 계속 바뀌게 되는 설치를 만들어낸 것이다. 예를 들어 <리투아니아>(p.96) 옆에 꽃 작업이 있을 때가 있고, 돌 작업이 있을 때가 있고, 다른 인물 조각이 있을 때도 있고 작품이 처해진 상황에 따라서,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실 각각의 설치마다 내가 의도하고 생각하는 바가 있는 내용이 있지만, 그것을 따로 이야기 해두지는 않는다. 첫 번째 개인전은 사실 미술계 자체에 관한 내용이었다. 작가와 큐레이터와의 관계, 신진 작가와 대가와의 관계 같은 것들이었지만 그런 내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이주현: 이번에 새로 제작한 '데오도란트 타입' 연작에서는 그런 설치나 여러 가지 상황이 보이지는 않는다. 이번 전시를 통해 사진 조각의 의미가 달라지게 된 것인가, 아니면 '데오도란트 타입' 자체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권오상: 이번 전시의 '데오도란트 타입'은 사진 조각이 점점 더 조각적으로 되는 시점이다. 표면의 코팅 처리 때문에 시각적으로도 좀 더 견고해 보이기도 하고, 내용적으로는 몇 년 전부터 인스톨레이션이 아닌, 개개의 조각으로서 '데오도란트 타입'이 설 수 있기를 바래왔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이번 '데오도란트 타입'은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을 염두에 두고, 거기서 파생되었기 때문에, 좀 더 조각적으로 보일 것이고, 보다 조각적인 구성을 하려 했다.
 
 
이주현: '더 플랫'의 경우는 이번 신작에서 어떻게 달라졌는가?
 
권오상: '더 플랫'에서는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다고 볼 수 있다. 2003년에 처음 제작된 작업이기 때문에, 조금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는 했지만, 이번 전시에는 '더 플랫'의 비중을 낮추려고 했기 때문에 출품작 수도 줄이려고 의도했다. 작품 전체가 같은 비중으로 전시되었을 때, 지나치게 회고전과 같은 형식이 되지 않을까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플랫' 같은 경우는 이번 신작에서도 처음에 가지고 있던 개념에 충실했다. 굳이 발전시켰던 부분을 찾자면, '더 플랫'의 16, 17, 18번(p.44-45)이 하나의 작업으로 구성되는데, 잡지 '노블레스'에 6년 간 등장했던 보석을 한 군데 모은 것이다. 그 시기 동안 한국에 광고된 보석인 동시에 지난 몇 년 간 시간의 흐름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이주현: 현대적 이미지와 광고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광고에 주목하게 된 특별한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해 달라.
 
권오상: 단순한 이유이다. 직업상 도록이나 잡지를 많이 보게 되는데, 학생 때에 '미디어가 작가를 만든다'는 광고판으로 작업을 하면서, 선언의 형식으로 스스로를 광고했다고 여겼다. 광고는 현대를 가장 잘 반영해주는, 게다가 약간의 판타지가 곁들여진 매체가 광고라고 생각했다. 광고는 미술을 차용하고, 요즈음은 미술이 광고에서 차용하기도 하고, 이미지들이 계속 꼬리를 물며 돌아가지 않는가. 헬레니즘 양식이 간다라 양식에서 유래하여, 한국의 석굴암 양식에 영향을 준다는 미술사적 경로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런 것들이 역시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에는 더욱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 환상과 관련해서 요즈음에 많이 하는 이야기가 젠 양식의 인테리어나 요가 같은 것들이다. 사실 그것들의 시작점은 아시아에 있는데, 유럽의 패션계로 유입되어 유행하게 되자, 보그(Vogue)나 바자(Bazaar)같은 매체들을 통해 아시아로 역수입되면서 매우 트렌디한 것들로 재인식된다. 흥미있는 경우는 그런 것들이 왜곡되어 들어오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데오도란트(deodorant) 이야기를 하자면, 백인은 70%, 흑인은 90%가 겨드랑이에서 암내가 나는데, 동양인은 3%만이 암내가 난다고 한다. 암내는 다른 인종에게는 일상이지만, 극동 아시아인들에겐 수술이 필요한 병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아시아에 대한 속사정을 잘 모르고 다국적 기업들이 동양에 데오도란트를 판매하겠다며 들어와서 겪었던 마케팅 실패 이야기가 있다. 겨드랑이 암내가 별로 나지 않는 동양인에게 판매를 하겠다는 것도 좀 그렇고, 광고 모델로는 백인을 기용했다면 어느 정도 호소력이 있었을 텐데 동북아에서는 전혀 인기가 없는 동남아의 모델을 기용했다는 사실들은 오해의 지점들을 시사한다. 사진조각에 '데오도란트 타입'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던 데에는 그런 오해의 지점을 시사하려는 이유도 있었다. 그러다가 정물이 등장했고, 그리고 정물 조각에서 자동차 작업을 시작했던 것이다.
 
이주현: 권오상은 '더 플랫' 연작을 조각 작품이라고 공언한다. 사진 평면으로 제시되는 작업을 조각이라고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권오상: 간단하게 설명하면 '더 플랫'에서 평면이 스스로 서면서 조각이 된다는 개념이다. 평면인 종잇장을 철사로 지지하면 같은 것들이 스스로 설 수 있는 작은 조각들이 되고, 조각들을 인스톨한 장면을 사진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사실 내가 '더 플랫'을 조각이라고 우기는 것은 현대미술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길버트와 조지(Gilbert & George)는 80년대에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회화 전시에서 영국식 정원에서 길버트와 조지가 손을 잡고 있는 장면을 그린 거대한 회화를 출품했다. 그다지 유명하지는 않은 작업인데, 그 작업의 도록에 실린 글을 보면 '나무판 위에 물감을 올려놓은 조각 작품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더 플랫'을 조각이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은 그런 작가들로부터의 영향도 있었을지 모른다. '더 플랫' 연작에 대해 '노략질의 예술'이라고 이야기하는 비평가도 있었다. 시계나 보석을 찍는 사진가들은 광고 사진계에서 내로라하는 작가들이다. 그 작은 상품들을 촬영하는데, 클라이언트 회사에서는 많은 돈을 지불하며, 사진가들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오려내서는 한데 모아 한 장의 작품으로 만든다. 각각의 사진 조각들이 퀄리티가 좋은 사진을 원본으로 좋은 인쇄를 한데다, 내가 대형 카메라로 촬영하기 때문에 조명을 조금만 맞추면 굉장히 입체적으로 보이는 괜찮은 사진이 나온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더 플랫' 연작에서의 저작권 문제가 굉장히 애매하다는 것이다. 한 저작물에 저작권자가 많이 개입될수록, 저작권 관련 소송을 제기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예를 들어, 보석으로 이루어진 작품을 보자면 샤넬, 티파니, 에르메스, 까르띠에,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회사가 엮이게 되고, 그와 연관된 광고 회사나 사진가들도 수없이 엮이게 되기 때문에 아무도 건드릴 수 없게 되는 모양새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남들이 힘들여 찍어놓은 사진으로 내가 너무 쉽게 작업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며 '더 플랫' 연작을 두고 '노략질의 예술'이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이주현: 보통 작가들은 한 연작을 완성해가며 다음 작업에 대한 구상을 시작한다. 다음의 새로운 연작에 대해 생각해 둔 것이 있는가?
 
권오상: 다음 작업의 개념은 소유하고 컬렉션하지 못하는 작업이다. 그 작업을 구상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런 작업을 한다 해도 갤러리는 다 컬렉션을 하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면, 티벳의 승려들이 모래로 그리는 만다라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수행을 하는 승려들이 몇 주간 정교하게 모래로 만다라를 그려내서는 인생의 무상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것을 다시 쓸어 담아 강에 띄워 보낸다고 한다. 그런데 불교 박물관에 가면 그런 것들이 본드에 붙어서 전시되어 있다. 그래서 소유할 수 있게 만들어지리라는 것을 가늠하기는 한다. 이전의 작품 중 '더 플랫' 연작도 사실 같은 맥락을 내포하고 있다. 과다한 것의 허무함 이랄까. '더 스컬프쳐' 연작도 무거운 것을 가볍게 보이도록 도색을 했다. 나는 사실 일반적으로 이 사회를 허무하고 공허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에는 이면성이 있으며 순환적이다. 나 스스로 어떤 면에서 모든 것이 순환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허무하다는 인생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III. 게임의 오류

권오상: 작업이 더 다양해진 후, 스스로의 작업을 되돌아보면서 내가 과연 무엇에 관심이 많은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누구는 죽음에 대해 작업하고, 누구는 두려운 것에 대해 작업하는데, 그런 작업의 대명제 같은 것이 나에게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결국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은 예술에 대한 예술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예전에 다른 화가들과 늦게까지 자기 작업에 대한 이야기들을 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 있던 작가 며칠 뒤에 나를 만나 하는 말이 "그러면 권오상 씨는 조각가가 되기 퍼포먼스를 하는 거네요?"라고 이야기했다. 개인적으로는 퍼포먼스를 좋아하지 않지만, 생각해 볼수록 맞는 말인 것 같다.
 
이주현: '조각가 되기 퍼포먼스'라는 것이 조각의 속성을 이용하고, 조각과 유사한 속성의 것들을 지속적으로 차용해서 조각 같지만 실제로는 조각이 아닌 조각을 만들고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렇다면 작업의 동기는 그러한 속성을 간파해서 성공적인 작업을 해보겠다는 전략적인 생각과 운명적으로 예술행위를 하는 예술가적 태도 중 어느 쪽에 가까운가?
 
권오상: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나는 '하늘에서 내려 준 작가'나 천재 작가의 개념을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믿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천재를 믿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믿지 않는 경우와, 자신이 잘났다는 것을 과시하는 경우이다. 스스로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나는 후자 쪽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내가 스스로 잘났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에 대한 확신이라고나 할까? 그런 것 같다. 예를 들어 처음에 '데오도란트 타입'이 나왔을 때에는 "천재는 없다"고 이야기 했다.
 
 
이주현: 이를테면 대학교 졸업전시에 출품했던 '미디어가 작가를 만든다'와 같은 슬로건 같은 것?
 
권오상: 그렇다.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내 작업을 카피하는 작업이 나왔을 때부터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여하튼 나는 미술계에 부재하는 지점들을 찾고, 게임과 같은 방식을 택하는 것 같다.
 
이주현: 미술계 안의 틈새나 지점을 찾는 것은 굉장히 전략적으로 보일 수가 있다. "정말 똑똑한 작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것이다. 실제로 작업에 이론서나 현대 철학의 텍스트나 예술 이론서, 미술사 서적 등을 참고하기도 하는가?
 
권오상: 학생 때에는 현대 예술이나 유명 텍스트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소설은 읽지 않고 그런 류의 책을 많이 기웃거렸다. 하지만 현대이론의 난해한 내용들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은 번역의 오류였던 것 같다. 이론을 쉽고 명쾌하게 해주는 선생들이 있는데, 그런 선생이 추천해주는 텍스트들은 수필 같은 느낌을 주는 것들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전 세계의 유명하다는 큐레이터나 미술계 인사들이 강연하는 데에 많이 기웃거렸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서 앞서 말한 선생을 만나서 "선생님 별거 없네요"라고 이야기를 하면 그건 일면일 거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현대철학이나 이론서라는 것이 별다른 게 아니라, 오늘날을 살아가다 보면 당연히 몸으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것들에 대해서, 정리하고 요약하며, 사례를 들어놓은 정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이 사실 너무 건방진 태도인지도 모르지만, 그런 생각으로 말미암아 환상이 좀 사라졌다. 그래서 작가들이 무얼 하는지를 많이 본다. 패션잡지도 많이 보고 미술잡지도 많이 본다. 그것은 나에게 중요한 일인 듯하다. 작품 간에 서로 중복되지 않는 지점을 찾기 위해서도 그렇다. 작가가 전시를 보지 않고, 미술 문화 잡지를 접하지 않는 것은 부동산 경제인들이 부동산 정보를 접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특별하게 따로 텍스트나 담론을 참고하려 애쓰지는 않는다.
 
이주현: 나는 미술 이론을 전공했다. 미술사나 미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그림책을 보면서 현대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러다가는 정말 좋은 작품이란 당대의 이론을 열심히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담론이 만들어지기 전에 화두를 만들어내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면서, 새로운 이론이 그런 문화 현상들을 참고하며 따라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실제로도 현대 철학서를 보면 작가들의 작품을 사례로 들어 제시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나는 권오상의 작업이 언어적으로 표상할 수 없는 성질을 다소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시대의 감각을 이론과 언어에 앞서 전달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권오상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권오상: 그런 부분을 생각해 본 적은 있다. 아무도 모를 것 같다. 노력도 하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부분도 있을 테지만, 두고 볼 일이다. 그런데 비슷한 느낌이 드는 것은 이번 '더 스컬프쳐' 연작을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라고 생각한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먼 미래는 아니고, 장담은 못하지만 그럴 소지가 높다고 본다. 과학도 그런 부분이 있다고 한다. 가설을 세우기도 전에 이것이 아닐까라는 어떠한 감각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한다고 한다. 작가도 마찬가지고, 사업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이성적으로 보인다고 말들을 하는데, 사실 나는 그다지 이성적인 사람은 아니다. 조각가 퍼포먼스와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도 있다.

권오상이 조각가 같은 느낌이 아닌데 조각을 하고 있는 것, 깔끔할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 집안을 둘러보면 쓰레기 더미인 것, 컴퓨터를 잘할 것 같이 보이는 학생이었는데, 사실은 못하는 학생, 지각을 안 할 것처럼 보이지만, 늘 지각하는 사람이라는 사실, 그런 것들, 외모 때문에 받는 오해가 좀 많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어차피 이 세상은 오해의 연속이라는 것으로 이야기를 많이 했다. 2000년에 <교란전>이라는 전시를 만들었을 때도 그게 동기가 되었고, "오류 인터체인지"라는 전시의 이름을 지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이주현: 그렇다면 '오해'라는 것이 권오상 작업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화두라고 볼 수 있는 것인가?
 
권오상: 예전에 한 미술관에서 사진가들과 전시를 했었다. 그 때 내가 전시의 타이틀을 정했는데, '오류 인터체인지'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교란전>은 대안 공간 성격의 갤러리에서 했던 전시의 타이틀인데 사실 그게 공모전이었다. 그 공모에는 3인 이상의 단체만이 응모할 수 있다는 제약이 있었다. 그런데 나와 작가 둘이서 한층 씩 나누어 개인전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다른 누군가를 영입하자니 공간이 어중간 하고, 그래서 가상의 인물을 만들고 가짜 포트폴리오, 가짜 약력, 가짜 인터뷰까지 만들었다.
 
이주현: 권오상의 작업은 전략적인 게임에 가깝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권오상 작업의 특성을 간략하게 살펴보자면, 동시대의 미술계가 지나지 않은 지점들을 짚어내고 있고, 시각적으로는 굉장히 강렬하고 주변을 압도하는 것이며, 비현실적이고 엉뚱한 감각을 전달한다는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권오상이 작업을 하는 데에 있어 어떤 원칙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러한 게임의 법칙 같은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권오상: 가장 중요한 원칙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코드가 들어 있으면 한다는 것이다. 나는 내 생각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을 믿지 않는다. 관객에게 여러 가지 기호를 주고 길을 찾아가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관객에게 스스로 읽어내라는 답변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무심하고 성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 스스로는 가장 친절한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서 어떤 관객들은 "그 영화 정말 너무 난해하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나는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이 난해하게 여겨진다는 사실을 넌센스라고 생각한다. 눈앞에 흘러가는 것을 보면 되지 않는가. 관객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삶에 맞추어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그 정도가 현대미술이 가지는 소통의 범위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바쁘게 일할 때에 가끔 다른 생각들을 한다. 그 때 그 엉뚱한 감각을 전하는 것, 그것이 현대 미술이 가지는 기능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현대의 작가라는 것은, 남들이 바빠서 갈 수 없는 한가로운 카페에 앉아 그들 대신 놀아주는 사람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 생각에 비추면 사실 나는 작가들이 좀 더 한가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래야 더 좋은 작업이 나오는 것 같다. 작가가 너무 바쁘면 작업이 갑갑해지는 것 같다.
 
이주현: 권오상의 작업에는 상업성 논란이 개입되어 있다. 작업이 무척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을 주며, 비싼 제품들을 등장시킨다는 데에서 연유한 오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앤디 워홀에게 당대의 비평가들이 가졌던 오해에서 비롯된 비판과 같은 맥락에 있는 것들이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권오상 스스로가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권오상: 내 작업은 명품이나 값비싼 제품을 소재로 하기는 하지만 상업성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사실 슈퍼카를 소재로 하는 '더 스컬프쳐'를 제작하면서는 10년 뒤의 미술관이나, 자동차 컬렉션과 미술 컬렉션을 같이 하는 아랍 왕자가 아니면 실제로 누가 이 작업을 사겠느냐고 생각했다. 브론즈로 슈퍼카를 만든다고 하니 권오상이 이제 모뉴먼트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 작업의 크기나 속성을 모르고 상업 갤러리에 전속이 되었으니 이제 브론즈로 팔릴만한 작업을 해야지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가 하다가 집에 들어와서 생각을 해보니 갑자기 억울해졌다.

이번 작업은 자동차 회사에서는 자기 회사의 자동차가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절대 사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관공서나 아파트 앞에 있을 만한 성격의 것도 아니다. 그러면 이것은 결국 미술관에 들어가야 하는 작업인 것이다. '더 플랫' 연작도 알고 보면, 사실 거실이나 사무실에 걸릴 만한 작업이 아니다. 만약 어느 회사와 함께 일하고 싶었다면, 한 화장품 회사의 제품만으로 작업을 했다거나 한 시계 회사의 제품으로만 작업을 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저작권이 맞물려 있어서 아무도 소송하지 않으려 하듯이, 너무 많은 브랜드의 정물들이 함께 있기 때문에, 아무도 사지 않을 소지가 많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고작 시계 컬렉터나 내 작품을 좋아해줄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컬렉터 정도일 것이다. 사실 처음 '데오도란트 타입' 연작을 제작하여 그 작업이 판매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것은 분명 안 팔릴 테니, 사진을 잘 찍어서 에디션을 잘 내어 팔아야지 했는데 그만두었다. 그리고 내 작품이 팔리고 안 팔리고에 대해서는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갤러리에서 작품이 팔리는 경우는, 작품이 정말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명성과 그의 아우라에서 기인하는 부분이 많다. 또 더 나아가서 이야기하자면 작가를 보고 작품을 사는 것보다는 갤러리의 명성을 보고 작품을 사는 부분이 더 크다. 예를 들어 구찌 제품을 사는 것은 예뻐서도 그렇지만 구찌이기 때문인 것이 더 크다. 종이 쪽지를 벽에다 구겨 넣은 작품이라도, 그 작품이 가고시안에서 전시되었다면 컬렉터는 벽을 통째로 사버릴 것이다. 팔릴 만한 작품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는 작가야 말로 문제 아닌가?
 
이주현: 권오상의 작업에는 공통된 스타일이 있으며, 지금까지의 작품세계는 분명히 그 안에서 순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작가들은 좋은 작업이든 아니든, 전혀 새로운 작업으로 그것을 깨고 나오기도 한다. 권오상에게는 언제가 그런 시기가 될 것 같은가?
 
권오상: 생활이나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면 불가능할 것 같다. 예전에 비해서 지금의 생활이 바뀌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사고방식 자체는 많이 바뀌지 않았다. 작가 중에는 작품이 양식화된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작가가 있다. 나의 경우, '데오도란트 타입'의 사진 조각으로 먼저 이름을 알리고, '더 플랫' 연작으로 그것을 깼기 때문에 좋은 작가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바뀐 것이 하나도 없다고 본다. 그리고 이번 신작인 '더 스컬프쳐' 연작도 많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내가 작업하는 바로는 바뀐 것이 하나도 없다. 작업실 안에서는 지점토로 만들어서 가볍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니까 그렇지만 스타일이 정형화되지 않은 작가라도, 한 작가가 다른 두 공간에서 전혀 다른 작품을 전시 해도 같은 작가의 작품임을 지각할 수 있는 소지가 충분하다고 본다. 진정한 작가의 작품은 그 작가가 만든 것이기 때문에 풍길 수 있는 어떤 느낌이 바뀌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로 언젠가 바뀔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사람의 체질이 바뀌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IV. 작가

이주현: 권오상의 작업은 예술을 위한 예술, 달리 말하자면, 메타예술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작업을 통해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야기해줄 수 있는가?
 
권오상: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내 작업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가, 대명제가 무엇인가. 이 질문들은 결국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연계가 되는 것 같다.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결국, 현대미술 자체와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란 무엇인가인 듯하다. 작업 자체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작가'라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괜찮은 작가는, 한동안 좋은 작업을 발표한다. 나는 스스로에게 작가로 잘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종종 한다. 결국엔 살아가는 게 목적인 것 같다. 특히, 작가로서 망가진 파탄의 삶을 살아가는 것 말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것. 안정적이라는 것이라는 것은, 작가라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큰 걸 바라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결혼을 할 때, 상대방의 집에서 "작가이기 때문에 딸을 줄 수가 없다"는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을 정도 말이다. 미술계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이주현: 권오상은 작가의 정체성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는 편인데, 작품에서도 그렇다. 권오상의 작업은 조각의 정체성에 대해서 재고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 사진도 마찬가지고, 디자인도 마찬가지고. 그렇다면, 작가라는 직업이 가지는 일상의 삶, 정체성, 작가의 영역, 조각이 가지는 속성과 조각의 영역에 관심을 두는 것을 같은 맥락으로 두고, 삶과 작업에 있어 직접적으로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볼 수 있는가?
 
권오상: 실제로는 그렇지만 공식적으로는 통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작가로서의 권오상과, 사람으로서의 권오상이 다른 존재라고들 인식했으면 한다. 왜냐하면, 작가 권오상이 일상의 권오상 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업을 하는 과정이나 작가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에 무슨 작업을 하지 라는 것 보다는, 자기 자신의 취향이나 행동 패턴, 혹은 사주 이런 것들을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면 답이 금세 나오지 않을까? 왜 이 작업을 했는지도 나오고, 그리고 이 작업 다음에 무슨 작업을 했는지도 답이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이런 재고들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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